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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yeonlee

48pages, 235*304, Bandal Publisher:Goyang-S.Korea, ISBN:978-89-5618-660-3

REVIEW

아카시아 길을 지나고 조금 더 가면
큰 나무가 하나 나오는데,
그 나무를 지날 땐
우시시우시시 소리 내지 말고
우시시우시시 비릉비릉
숨도 쉬지 말고 빨리 지나야 해.

생각만 해도 무서운 숲 길.
아이는 빌린 책을 돌려주러
친구네 집에 무사히 갈 수 있을까요?

나를 오싹하게 만든 나무 한 그루
어릴 적에는 누구나 하나쯤은 두려운 존재가 있게 마련입니다. 컹컹 짖어대는 건넛마을 개라든지, 장마 때면 물이 불어나 아슬아슬하게 건너던 다리라든지, 밤에 울어대던 귀신새 소리라든지 크든 작든 무섭거나 두려운 기억이 떠나지 않고 남아 있지요. 이우연 작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커다란 나무를 그린 드로잉 한 장이 있었어요. 그 드로잉을 들여다보다가 어린 시절 겪은 경험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어릴 적 살던 마을에는 커다란 구멍이 난 아주 큰 나무가 있었어요. 친구 집에 갈 때마다 꼭 그 앞을 지나야 했는데 그때마다 몸이 오싹하고 무서웠지요.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나를 오싹하게 만든 나무와 함께 그 앞을 지나다니던 작은 ‘나’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었어요. 나무 앞을 지나고 다 지나면 그제야 마음을 놓던 그 작은 경험을 잊지 않고 기념하고 싶었습니다." <작가노트 중>

커다란 나무에 생긴 까만 구멍. 어른이 되면 왜 그랬을까 싶을 만큼 아무것도 아닌 일이긴 하지만, 아이한테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입니다. 웬만하면 그 길을 지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디 그게 쉽나요? 학교를 갈 때도, 친구 집에 갈 때도, 심부름을 갈 때도 지날 수밖에 없는 길이지요.

두려움을 생명의 신비함으로 바꿔놓은 상상의 힘
아이는 돌려주기로 약속한 책을 친구한테 주기로 합니다. 아이가 가는 길에는 어김없이 커다란 나무가 기다립니다. 아이는 아카시아 길까지는 즐겁게 걸어갑니다. 그러다가 숲에 이르고 어둑어둑한 길에 들어서고부터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조금 더 가고 큰 나무가 조금씩 보일 때는 온 몸이 오싹하고 숨이 멎을 만큼 두렵습니다. 저 구멍 안에서 누군가가 쑥 튀어나와 나를 잡아끌 것만 같습니다. 깜깜한 구멍으로 빠지면 다시는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온갖 무서운 생각이 머릿속을 뱅뱅 맴돕니다. 안 그러고 싶어도, 씩씩하고 싶어도 뜻대로 안 됩니다. 소리도 안 내고, 숨도 안 쉬고 조심조심 까만 구멍을 지납니다. 그 나무를 지날 때는 누군가가 나타나 재빨리 그곳에서 건져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커다란 나무는 무섭기도 하지만 신비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저렇게 큰 나무가 있을까, 저 까만 구멍에는 정말 누가 살까, 나이는 우리 할아버지보다 많을까, 아직도 살아 있을까?
아이의 상상은 끝이 없습니다. 작가는 그 상상의 끝을 잡고 이 책을 빚었습니다. 두려운 마음은 바꿔 말하면 알 수 없는 존재한테서 느끼는 신비감이나 경외감이기도 합니다. 아이도 커다란 나무와 까만 구멍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신비함을 느꼈을 테지요. 아이는 그곳을 지나며 느끼는 온갖 무서운 마음을 어떤 신비한 존재가 나타나 다독이며 용기를 주었으면 하고 기도했을 테지요. 옛사람들도 그랬습니다.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이끌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커다란 나무와 바위에 존엄을 바쳤습니다. 애니미즘, 곧 사람이 아닌 자연에도 신비하고 고귀한 생명이 깃들었음을 인정하는 마음이 평화를 빚을 수 있습니다.

감정을 다독이듯 ‘그림 짓기’로 섬세하게 빚어낸 그림책
‘아이’의 힘은 정말이지 ‘말로 다할 수 없는 존재’라는 데 있습니다. 아이는 아직 세상을 잘 모릅니다. 그렇기에 어른보다 자연에 더 가깝습니다. 자연이 하는 말을 다 알아듣는 것만 같습니다. 어른들은 모르는 아이만의 말로 자연과 이야기를 나누는 듯합니다.
이 책은 판형이 꽤 큽니다. 작가는 아이가 커다란 나무를 지나며 느낀 무서움과 두려움을 깊이 있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글로 감정을 쏟아내기보다는 그림으로 감정을 다독이듯 섬세하게 ‘그림 짓기’ 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독자들이 큰 그림을 보며 아이 마음에 다가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먼저 독자들이 그림 속에서 아이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아이가 지나는 길과 나무, 나무 속의 정령들, 그들과 어울리거나 부딪히는 모습들을 표현했습니다. 그런 다음 마지막에 짧게 숨을 토해내듯 글을 덧입혔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글만 보면 참 재미없습니다. 아이의 감정은 글에 있지 않고 그림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야 나무를 다 지나왔어.
나는 힘이 쏙 빠졌지.
하지만 나무는 그대로야.
펄펄 살아 있어.

작가는 아이의 성장통을 ‘펄펄 살아 있어.’라는 말로 대신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림은 까만 나무가 아닌 푸른 줄기가 살아 있는 나무를 그렸습니다. 아이 몸의 힘은 쏙 빠졌지만, 이러한 경험은 그만큼 펄펄 살아 있게 한 힘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제 아이의 마음속에는 나를 견디게 한 정령이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는 무엇이 살고 있나요?

_출판사 서평(2014.12)